지역 신문 1면의 '부고(訃告)란'이 길어질 때: 공동체의 소식을 전하던 마지막 목소리
지역 신문 1면의 '부고(訃告)란'이 길어질 때: 공동체의 소식을 전하던 마지막 목소리
1. 1면의 가장 중요한 소식, '부고'

한때 지역의 대소사를 가장 먼저 알리던 지역 신문 1면의 풍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새로운 공장 착공이나 군민 체육대회 소식 대신, 누군가의 마지막을 알리는 부고(訃告) 기사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한정된 지면에 길게 늘어선 부고란은 그 자체로 한 지역의 인구 통계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세상을 떠나는 어르신의 마지막 인사가 더 큰 뉴스가 되는 현실. 이것은 단순히 한 언론사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의 활력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비극적인 신호입니다. 신문은 더 이상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나보내는 일에 지면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신문
▲별세: 김말순(향년 92세) ▲상주: 이영철(자) ...
▲별세: 박상호(향년 88세) ▲상주: 박철민(자) ...
작은소식: 군청, 하반기 농업 보조금 신청 접수...
2. 마지막 연결고리는 어떻게 끊어지는가
지역 신문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었습니다. "정미소 집 둘째 아들"이 장학금을 받고, "떡집 딸"이 시집을 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거미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부고란조차 누가 누구의 자식이고, 어느 마을에 살았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며 공동체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저널리즘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인구가 줄어드니 신문을 구독할 사람이 없고, 동네 가게들이 문을 닫으니 광고를 실을 광고주가 없습니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신문사는 기자의 수를 줄이고, 취재의 질은 떨어집니다. 결국 활자 속에만 존재하던 공동체의 연결고리는, 잉크가 마르고 인쇄기가 멈추는 순간 속절없이 끊어지고 맙니다.
3. 감시받지 않는 군청, 들리지 않는 주민의 목소리

지역 신문의 폐간은 단순히 신문 하나가 사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지역 사회의 '감시견'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군청의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 계획은 없는지,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존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역 신문이 사라진 자리는 '뉴스 사막'이 됩니다. 주민들은 지역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알 길이 없고, 소수의 권력자나 외부 자본에 의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져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소통의 창구가 막힌 주민들은 파편화되고, 뉴스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공동체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흩어질 뿐입니다.
기능 | 지역 신문 존재 시 | 지역 신문 부재 시 (뉴스 사막) |
---|---|---|
지방 행정 감시 | ● 활발 | ○ 부재 |
정보 접근성 | ● 높음 | ○ 낮음 |
주민 참여 | ● 용이 | ○ 어려움 |
4. 마지막 인쇄기가 멈춘다는 것

마지막 인쇄기가 멈추고, 더 이상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이 배달되지 않는 아침을 상상해 보십시오. 페이스북 그룹이나 지역 맘카페가 그 빈자리를 일부 대신할 수는 있겠지만, 공동체의 역사를 기록하고, 의제를 설정하며, 권력을 감시하던 체계적인 목소리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 신문의 종간(終刊)은 한 사업체의 폐업이 아니라, 그 지역의 공식적인 공론장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수십 년간 빼곡히 기록되던 마을의 희로애락이 더는 기록되지 않는 순간, 공동체의 역사는 살아있는 현재에서 박제된 과거로 넘어갑니다. 부고란의 마지막 이름이 인쇄된 그 신문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공동체 자신의 부고 기사일지 모릅니다.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인사
지난 40년간 군민의 눈과 귀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펜을 놓지만, 우리 고장의 이야기는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 ○○신문 임직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