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왜 '세금테크' 이상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나?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와 함께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지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10만 원을 기부하면 100% 세액공제와 함께 3만 원 상당의 지역 특산품까지 받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혜택은 분명 초반 흥행에 불을 지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의 본질인 '고향 사랑'과 '기부 문화 활성화'는 희미해지고, 오직 세금 감면과 답례품만 남았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고향사랑기부제가 왜 세금 감면 이상의 진정한 매력을 발산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지, 그 구조적 원인을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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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향에 마음을 전하다, 고향사랑기부제의 희망찬 출발

고향사랑기부제의 청사진은 매우 이상적이었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주소지 외의 지자체에 기부하면, 해당 지자체는 이를 재원으로 삼아 지역의 복지,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주민 복리 증진 사업에 사용합니다. 기부자에게는 세액공제라는 금전적 혜택과 함께, 기부 지역의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구조입니다. 이는 단순히 세금을 내는 것을 넘어, 국민 개개인이 지방 소멸 문제에 직접 참여하고, 도시와 농촌 간의 재정 격차를 완화하며, 기부를 통해 새로운 관계 인구를 형성하는 선순환을 목표로 설계되었습니다. 즉, 금전적 기부를 매개로 기부자와 지역 사이에 따뜻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제2, 제3의 고향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도의 핵심 가치였습니다. 이러한 긍정적 취지 덕분에 많은 국민들이 기대를 걸었고, 제도 시행 초기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목표액을 초과 달성하는 등 성공적인 안착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고향사랑기부제 기본 구조
기부자 (개인) ➡️ 지자체 (주소지 외) ➡️ 지역 주민 복리 사업
↳ 세액공제 + 답례품 제공 (기부자 혜택)
세액공제라는 덫, 본질을 잃어버린 기부

하지만 제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내세웠던 '10만 원 이하 전액 세액공제'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이 강력한 혜택은 제도의 홍보를 '기부'가 아닌 '세금테크' 혹은 '절세 상품'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각종 재테크 커뮤니티에서는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한 절세 팁이 공유되고, 사람들의 관심은 '어느 지역을 도울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10만 원을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고 답례품까지 챙길 수 있을까?'에 집중되었습니다. 기부의 동기가 순수한 이타심이나 지역에 대한 애정이 아닌, 철저히 경제적 이득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이는 1인당 평균 기부액이 10만 원 언저리에 머무는 통계가 명확히 보여줍니다. 1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공제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더 큰 금액을 기부할 유인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제도는 진정한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지 못한 채, 10만 원짜리 세금 환급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기부자 참여 동기 (가상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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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답례품 경쟁, 기부인가 쇼핑인가

세액공제 문제가 제도의 동기를 왜곡했다면, 답례품은 그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은 한 명의 기부자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과도한 답례품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한우, 전복, 와인 등 고가의 특산품을 내세우거나, 심지어는 지역 상품권이나 숙박권까지 등장하며 기부 유치전은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기부 플랫폼을 마치 지역 특산품 온라인 쇼핑몰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기부자들은 지역의 비전이나 기금 활용 계획보다는 '어느 지역 답례품이 가성비가 좋은가'를 먼저 비교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답례품 개발 여력이 있는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킵니다. 정작 도움이 절실한 소규모 지자체는 매력적인 답례품을 마련하기 어려워 기부금 모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기부는 사라지고 쇼핑만 남은 셈입니다.
답례품 종류에 따른 기부 쏠림 현상 (가상)
내 돈이 어떻게 쓰이나요? 투명성과 스토리텔링의 부재

기부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내가 낸 돈이 어떻게 쓰여 세상을 바꾸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현재 고향사랑기부제는 이 부분이 가장 취약합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기부금을 '지역 활성화를 위한 기금'으로 통합 관리할 뿐, 구체적인 사용 내역과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 소홀합니다. 기부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돈이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 보수 공사에 쓰였는지,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건립에 쓰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없는 기부는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기부금 1억 원이 모여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한 한글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민준(가명) 어린이는 '이제 학교 친구들과 더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라며 웃었습니다." 와 같은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절실합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감동적인 성과 공유 없이는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신뢰도 높은 기부 시스템을 위해 필요한 것
- 실시간 기금 사용내역 공개: 기부자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회계 시스템
- 구체적인 사업 계획 제시: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기부 유치
- 정기적인 성과 보고: 사진과 사연을 담은 임팩트 리포트 발송
- 기부자 피드백 채널 마련: 기부자의 의견을 듣고 사업에 반영하는 소통 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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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고향 사랑'으로, 제도의 재설계를 제안하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어떻게 재설계해야 할까요? 첫째, '지정기부' 제도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기부자가 '독거노인 지원', '청소년 장학금', '환경보호' 등 특정 사업을 선택해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부의 목적성을 명확히 하고 기부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둘째, 답례품 제도를 대폭 손질해야 합니다. 물품 제공 외에 '명예시민증 발급', '지역 축제 VIP 초청', '기부자의 이름으로 나무 심기' 등 정신적·상징적 보상을 강화하여 과도한 경쟁을 막고 진정한 유대감을 형성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통합적인 정보 공개 플랫폼을 구축하고, 각 지자체가 기금 활용 사례를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홍보하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여전히 지방을 살릴 소중한 불씨입니다. 단기적인 모금액에 연연하기보다, 기부자와 지역이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신뢰 기반의 시스템으로 거듭날 때, 이 제도는 비로소 '세금테크'의 껍질을 깨고 '고향 사랑'이라는 이름값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향사랑기부제 개선 방향
문제점 (As-Is) | 개선 방향 (To-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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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혜택 중심 홍보 | 기금 활용 스토리 중심 홍보 |
과도한 답례품 경쟁 | 상징적·정신적 보상 강화 |
불투명한 기금 운용 | 지정기부 활성화 및 투명한 성과 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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