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리네 삶의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는 블로거, '인사이트 탐험가'입니다. 2025년 8월, 늦여름의 햇살 아래 한적한 시골 장터를 찾았습니다. 왁자지껄한 흥정과 구수한 음식 냄새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달리, 지금의 장터는 너무나도 조용합니다. 좌판을 지키는 상인의 깊은 주름과, 장바구니를 든 손님의 느린 걸음이 이곳의 시간을 말해줍니다. 상인과 손님이 함께 늙어버린 곳, 바로 우리 곁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5일장'의 마지막 풍경입니다. 오늘은 이 쓸쓸한 장터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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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터,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음을

5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닷새에 한 번 열리는 마을의 광장이자 살아있는 소식통이었습니다. 이웃 마을 소식은 물론, 자식들의 혼사나 동네의 대소사가 모두 이곳에서 오갔습니다. 갓 튀겨낸 시장 통닭과 뻥튀기 기계의 요란한 소리, 직접 기른 채소를 다듬는 할머니의 손길은 장터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5일장은 인근 지역의 모든 물자와 사람이 모이는 유일한 경제의 중심지였고, 고립된 농촌 마을 주민들에게는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소중한 통로였습니다. 이처럼 5일장은 물건 이상의 것, 즉 '관계'와 '정'을 교류하며 지역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것입니다.
2. 편리함의 역습, 장터를 떠나는 발길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장터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읍내에 들어선 대형 마트와 편의점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위협은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온라인 쇼핑과 새벽 배송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물론, 이제는 중장년층까지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문 앞에 모든 물건이 도착하는 편리함에 익숙해졌습니다. 더 이상 무거운 짐을 들고 닷새를 기다려 장터에 나갈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또한, 규격화된 상품과 쾌적한 쇼핑 환경을 제공하는 대형 유통 채널과 달리,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노점 형태의 5일장은 경쟁력을 잃어갔습니다. '편리함'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가치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익숙함'을 빠르게 잠식하며 장터의 손님들을 앗아갔습니다.
3. "이제는 힘들어 못 나와", 마지막 상인들

손님의 발길이 끊기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장터를 지키는 상인들 자신이 떠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십 년간 이 장, 저 장을 떠돌며 좌판을 펼쳐온 상인들의 나이는 이제 대부분 70대를 훌쩍 넘겼습니다. 새벽 일찍 짐을 싣고 나와 하루 종일 땡볕과 추위에 맞서는 고된 장사를 이어갈 체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제는 힘들어 못 나와"라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닌, 한 세대의 고단한 삶이 막을 내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수입과 고된 노동을 감수하며 장돌뱅이의 삶을 택하려는 젊은이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결국 한 평생 장터를 지켜온 마지막 상인이 좌판을 접는 순간, 그 자리는 영원히 비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4. 텅 빈 장바구니, 사라지는 단골손님

장터의 쇠락은 공급(상인)과 수요(손님) 양측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터의 주 고객층이었던 마을 주민들 역시 상인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모두 도시로 떠났고, 마을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만 남았습니다. 이들은 면허를 반납하여 장터까지 올 교통수단이 마땅치 않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갈 기력도 없습니다. 자녀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에 씀씀이를 줄이는 것도 장터 방문을 꺼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때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줄 생선이며 과일을 가득 채웠을 장바구니는 이제 겨우 한두 끼 찬거리를 담으면 그만입니다. 단골손님의 빈자리는 그 어떤 새로운 손님도 채울 수 없는 깊은 공동화 현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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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억 속의 장터, 기록되지 않는 소멸

5일장의 소멸은 하나의 문화가 공식적인 기록 없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대규모 전통시장과 달리, 소규모 5일장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정책에서도 소외되기 일쑤입니다. 상인들의 사업자 등록이 불분명하고, 매출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체계적인 관리나 통계 집계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5일장이 문을 닫았는지, 얼마나 많은 상인들이 장터를 떠났는지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저 상인들과 주민들의 기억 속에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한 시대의 생활양식과 공동체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도 전에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6. 마지막 풍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

사라져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5일장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본질적 가치를 계승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일장을 지역 축제나 문화 행사와 결합하여 '문화관광형 테마 장터'로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젊은 예술가나 청년 농부들이 자신의 창의적인 상품을 선보이는 플리마켓 형태를 접목하여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찾아가는 미니 장터'나 '꾸러미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중요한 것은 5일장을 단순한 상거래 공간이 아닌, 세대와 세대를 잇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고, 그 마지막 풍경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지혜를 모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