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정책과 제도의 역설

군부대 이전·해체, 지도에서 사라지는 '군인 마을'의 기록

구0305 2025. 8. 1. 21:57
군부대 이전·해체, 지도에서 사라지는 '군인 마을'의 기록

군부대 이전·해체, 지도에서 사라지는 '군인 마을'의 기록

1. 하나의 운명 공동체: 군부대와 함께 태어나고 성장한 도시

오래된 시골 마을의 정겨운 골목길 풍경

강원도 화천, 양구, 인제, 경기도 연천. 이들 접경지역 도시들의 역사는 군대의 역사와 사실상 동일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안보 논리에 따라 수많은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허허벌판이었던 땅에 도시가 생겨났습니다. 젊은 군인들과 그 가족들의 수요는 곧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식당, 목욕탕, 이발소, PC방, 군장점 등 모든 상점은 군인을 상대로 문을 열었습니다. 주말 외출·외박 나온 군인들로 거리는 늘 북적였고, 이들이 쓰는 돈은 그대로 지역 경제의 핏줄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군부대는 단순한 주둔지가 아닌, 도시의 심장이자 존재 이유였습니다. 상인들은 군인을 아들처럼 대했고, 군인들은 마을을 제2의 고향처럼 여겼습니다. 이처럼 군인 마을은 군대와 지역이 서로를 의지하며 생존해 온 특수한 운명 공동체였습니다. 지역 경제의 70~80%를 군부대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구조였지만, 누구도 이 공생 관계가 영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전형적인 군인 마을 경제 구조
군인 대상 소비(외식, 숙박 등) 75% 농업/임업 (15%) 기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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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방개혁'이라는 쓰나미, 하루아침에 멈춰버린 상권

가게 문이 닫히고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있는 모습

평화로워 보이던 공생 관계는 국방개혁 2.0이라는 거대한 쓰나미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병력 감축과 군사력의 효율적 재배치라는 명분 아래, 수십 년간 지역을 지탱해 온 사단들이 해체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부대 이전을 시작했습니다. 부대가 떠난다는 소식은 마을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수만 명에 달하던 군인과 군무원, 그 가족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도시는 유령도시처럼 변해갔습니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던 거리는 텅 비었고,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지 않은 상가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은행 대출로 가게를 연 상인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습니다.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입니다. 국가 정책의 변화가 한 도시의 생존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공동화 현상, 그리고 그로 인한 상권 붕괴는 너무나 빠르고 가혹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군부대 이전 전후 지역 핵심 지표 비교
이전 前 유동인구 100 이전 後 유동인구 15

3. "내 청춘을 바쳤는데…" 남겨진 상인들의 한숨과 눈물

텅 빈 식당에 홀로 앉아 있는 노인 상인의 모습

이러한 붕괴의 과정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평생을 군인들과 함께 살아온 지역 주민들입니다. 20대 청춘에 이곳에 들어와 군인들에게 밥을 해주고, 머리를 깎아주며 자녀를 키워냈던 상인들은 이제 60~70대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가게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인생 그 자체였습니다. 모든 재산을 쏟아부은 가게를 이제 와서 접을 수도,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평생을 희생해왔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소외감과 배신감에 시달립니다. 정부가 내놓는 정부 대책은 일시적인 지원금이나 단기적인 사업에 그쳐, 근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골목 안쪽에서, 남겨진 상인들은 오늘도 깊은 한숨과 함께 텅 빈 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겨진 주민들의 심리 변화 과정
기대/안정 충격/불안 분노/상실 체념/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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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회성 보상'과 '판박이식 재생사업'의 한계

회의실에 놓인 서류들과 텅 빈 의자

정부와 지자체라고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부대 이전 지역을 위한 지원 조례가 만들어지고, 발전 기금이 조성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일회성 보상이나 상가 리모델링 지원금은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근본적인 자생력 확보와는 거리가 멉니다. 더 큰 문제는 하향식 정책으로 추진되는 '판박이식' 도시재생 사업입니다. 지역의 특수성과 주민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중앙 부처의 지침에 따라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원을 만들고 벽화를 그리는 사업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탁상행정은 실제 주민들의 필요와는 괴리가 크고, 결국 예산 낭비 사례로 전락하기 일쑤입니다. 주민 의견 수렴 부재 속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은 텅 빈 상가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한 채, 또 하나의 흉물로 남을 위험이 큽니다.

하향식 정책의 실패 과정
부대 이전 정부 기금 지원 판박이 사업 시행 주민 외면/실패

5. '안보'를 위해 희생하고, '안보' 때문에 버려지다

철조망과 그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풍경

군인 마을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국가안보'라는 특수한 논리입니다. 수십 년간 접경지역 주민들은 군사시설보호법 등 각종 규제 속에서 재산권을 제약받고,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를 위한 특별한 희생'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이었습니다. 국가는 안보를 위해 이들의 희생을 요구했고, 주민들은 기꺼이 감내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국방 효율화라는 또 다른 국가안보 논리에 의해 이들의 생존 기반이 송두리째 뽑혀나가고 있습니다. '안보' 때문에 참고 살았는데, 이제는 '안보' 때문에 망하게 생긴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의 문제입니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성되고 유지되었던 도시인만큼, 그 기능을 다한 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가 더 큰 국가적 책무를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입니다.

국가안보와 지역생존의 불균형
국가안보 지역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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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복 벗은 도시의 미래, 폐허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오래된 건물 벽에 그려진 희망적인 그래피티 아트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군대라는 단일 정체성에서 벗어나 '군복 벗은 도시'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부대가 떠난 자리에 남은 막대한 유휴 군사시설은 골칫거리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막사를 리모델링하여 예술가 레지던시나 청년 창업 공간으로 제공하고, 연병장을 캠핑장이나 문화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간인 통제선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안보와 생태를 결합한 DMZ 평화관광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막대한 예산과 장기적인 계획, 그리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폐허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는 군인 마을의 고독한 사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포스트-군인 마을의 전환 전략 (SWOT 분석)
강점 (S) 독특한 군사 역사, 수려한 자연환경
약점 (W) 수도권과의 접근성, 고령화된 인구
기회 (O) 유휴 군사시설 활용, DMZ 관광, 정부 지원
위협 (T) 인구 지속 감소, 투자 유치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