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비교와 비판적 시각

일본 유바리 시 파산 20년, 한국의 쇠퇴 도시에 던지는 교훈

구0305 2025. 7. 31. 11:51
일본 유바리 시 파산 20년, 한국의 쇠퇴 도시에 던지는 교훈

일본 유바리 시 파산 20년, 한국의 쇠퇴 도시에 던지는 교훈

화려했던 탄광 도시의 몰락, 유바리는 왜 파산했나?

홋카이도에 위치한 유바리 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최고의 탄광 도시로 검은 다이아몬드, 즉 석탄과 함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인구는 12만 명에 육박했고, 일본에서 가장 먼저 재정자립을 이룰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의 변화로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도시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의 대응이었습니다. 유바리 시는 사라진 탄광의 영광을 '관광'으로 재현하려 했습니다. '탄광에서 관광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막대한 빚을 내어 스키장, 테마파크, 박물관 등을 우후죽순으로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단일 산업 구조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현실성 없는 장밋빛 미래에 기댄 과잉 투자는 결국 독이 되었습니다. 관광객은 예상에 턱없이 미치지 못했고, 시설 운영비와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7년, 약 353억 엔(한화 약 3,500억 원)의 빚더미에 앉아 지방재정 파탄을 선언하게 됩니다. 이는 일본 최초의 지자체 파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었습니다.

유바리 시 인구 및 부채 변화 (1980-2007)
연도 1980 2007 인구 (만명) 7.8 1.2 부채 (억 엔) 50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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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깎는 구조조정, '선택과 집중'의 고통스러운 교훈

텅 비어 있는 도시의 거리

파산 선고 이후 유바리 시에 닥친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가혹했습니다. 중앙정부의 관리 하에 들어간 유바리는 철저한 긴축 재정에 돌입해야 했습니다. 공무원 수는 절반으로 줄었고, 급여는 40% 삭감되었습니다. 시장의 월급은 259만 원에서 77만 원으로, 퇴직금은 80%가 삭감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7개였던 초등학교는 1개로, 4개였던 중학교도 1개로 통폐합되었습니다. 시립병원은 문을 닫고 진료소로 축소되었으며, 도서관과 공중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공공서비스 축소가 이어졌습니다. 이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된 콤팩트 시티 전략의 결과였습니다. 흩어져 사는 주민들을 특정 구역으로 모으고, 그곳에 최소한의 행정 서비스를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생활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시를 떠났고, 인구는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유바리의 구조조정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과정은 시민들에게 깊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습니다.

유바리 시 공공시설 및 예산 변화 (2006 vs 2024)
2006년 (파산 전) 예산 114억엔 초교 7개 2024년 (현재) 예산 42억엔 초교 1개

파산 20년 후, 절망 속에서 찾은 작은 희망

지역 특산물인 유바리 멜론

잿더미 속에서도 희망은 피어나는 법일까요? 파산 후 약 20년이 흐른 지금, 유바리는 여전히 인구 7천 명대의 초미니 도시로 남아있지만,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거대 자본에 의존했던 실패를 교훈 삼아, 이제는 지역 고유의 자산을 활용한 지속가능성에 집중합니다. 그 중심에는 세계적인 명품 과일인 유바리 멜론이 있습니다. 농가들은 혹독한 품질 관리를 통해 최고급 멜론을 생산하고, 이는 시의 중요한 수입원이자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행정의 공백을 주민 주도의 커뮤니티 활동이 메우고 있습니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는 시민들의 자원봉사로 명맥을 잇고 있으며, 작은 상점과 식당들이 서로 협력하며 지역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합니다. 화려한 부활은 아닐지라도, 유바리 시민들은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도움이 아닌, 내부의 역량으로 도시를 살리려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재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바리 시 현재 주요 수입원 구성
유바리 멜론 등 특산물 (40%) 중앙정부 교부금 (35%) 소규모 관광/기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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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리의 경고, 한국 쇠퇴 도시의 미래는?

한적한 한국의 지방 도시 골목

유바리의 이야기는 더 이상 바다 건너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면서, 한국 역시 지방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정 산업, 예컨대 조선업이나 철강업에 의존해 온 많은 지방 도시들이 관련 산업의 침체로 유바리와 유사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랩니다. 유바리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문제가 터진 뒤의 대응은 너무 늦고 고통스럽다는 것. 위기를 예측하고 한발 앞서 대비하는 선제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둘째, 모든 도시에 적용되는 '만능 해결책'은 없다는 것입니다. 중앙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건 사업이나 보여주기식 축제로는 도시를 살릴 수 없습니다. 각 도시가 가진 고유의 역사, 문화, 자원을 바탕으로 스스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주체가 되어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도록 지원하는 균형 발전 철학이 절실한 때입니다. 유바리의 실패를 면밀히 복기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만, 우리는 소중한 우리 도시들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인구 소멸 위험 지역 현황
수도권 안전 소멸 고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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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이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의 전환

지역 주민들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

유바리가 주는 궁극적인 교훈은 도시의 본질에 대한 성찰입니다. 파산 직전까지 유바리는 거대한 건물, 스키장, 테마파크와 같은 '하드웨어'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텅 빈 건물이 도시를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진정한 도시재생은 눈에 보이는 시설이 아닌, 그 안을 채우는 '소프트웨어', 즉 사람 중심의 가치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는 지역 리더를 양성하고, 청년들의 작은 도전을 응원하며, 노년층의 지혜와 경험이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너진 공동체 회복을 위해 주민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고 아카이빙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쇠퇴 도시의 목표는 과거의 인구수나 경제 규모를 회복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보장하고,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느냐에 있습니다. 하드웨어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도시재생 패러다임의 전환
과거 (하드웨어 중심) 대규모 토건 시설 투자 실패 미래 (소프트웨어 중심) 사람 투자 공동체 회복 문화/교육 지속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