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대응기금,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까?
절박함의 산물, 지역소멸대응기금의 탄생과 현실

대한민국은 지금 '지방 소멸'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과 저출산·고령화의 이중고 속에서 지방 도시들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2022년부터 매년 1조 원 규모의 지역소멸대응기금을 조성하여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89개 지자체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취지는 명확합니다. 인구 유출을 막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지속가능한 지역 사회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지방재정 지원을 넘어, 국가적 위기인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지만 기금이 운용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취지는 좋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 막대한 자금은 소멸의 위기를 막는 '마중물'이 되고 있을까요, 아니면 비판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반복되는 전시행정, '하드웨어' 중심 사업의 한계

기금 운용에서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는 문제는 바로 '하드웨어 중심주의'입니다. 많은 지자체가 기금을 활용하여 공원, 센터, 산책로, 주차장 등 눈에 보이는 시설물을 짓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물론 쾌적한 환경 조성은 중요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입니다. 옆 동네에 출렁다리가 생기면 우리도 만들고, 다른 지역에 귀농·귀촌 지원센터가 들어서면 비슷한 건물을 올리는 식의 전시행정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드웨어 사업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쉽고, 사업 추진 과정을 보여주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된 지자체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하지만 정작 완공 후에는 이용률이 저조하거나, 막대한 운영비 부담이 고스란히 지자체의 몫으로 돌아와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인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의 부재는 해결하지 못한 채, 텅 빈 건물과 시설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사람에 투자하라, '소프트웨어'와 '관계인구'라는 새로운 해법

'밑 빠진 독'의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은 '사람'에 대한 투자, 즉 소프트웨어 사업에 있습니다. 건물을 짓기 전에 그 안을 채울 콘텐츠와 사람을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년 창업가를 위한 임대료 지원과 컨설팅,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브랜드 개발, 코딩 교육이나 스마트팜 기술처럼 미래 유망 산업에 대한 주민 재교육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적 자본의 잠재력을 키우고, 지역 스스로가 자생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주인구(거주자) 늘리기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관계인구라는 새로운 개념에 주목해야 합니다. 관계인구란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주말 방문, 고향 사랑 기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지역과 꾸준히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지역 활동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들의 재능과 아이디어를 지역 발전에 활용하는 주민 주도형 모델은 인구 감소 시대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평가 방식의 혁신,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다

결국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금의 배분과 평가 시스템 자체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1년 단위의 단기 평가로는 장기적인 호흡이 필요한 인재 양성이나 공동체 활성화 사업의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장기적 관점에서 다년도 사업을 보장하고, 그 과정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컨설팅해주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또한, '착공률'이나 '완공률' 같은 투입 중심의 지표가 아니라, '청년 인구 순유입률', '창업 기업 수', '생활 만족도' 등 실질적인 변화를 측정하는 성과지표 개선이 시급합니다. 이 과정에서 행정 주도가 아닌, 지역 주민과 전문가, 그리고 다양한 민관협력 주체들이 사업 계획 단계부터 참여하여 지역의 특수성과 필요를 반영해야 합니다.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변화시켰는가'를 묻는 평가 시스템이 정착될 때, 비로소 지역소멸대응기금은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귀중한 투자가 될 것입니다.
구분 | 기존 평가 (As-Is) | 개선 방안 (To-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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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 단기 / 투입 중심 | 장기 / 성과 중심 |
주요 지표 | 사업 집행률, 시설 완공률 | 일자리 창출, 인구 변화, 만족도 |
사업 기간 | 주로 1년 단위 | 다년도 사업 보장 및 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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