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체성 2

뱀골'과 '뒷산'은 없고 '그린빌 1차'만 남았다: 아파트 단지가 지우는 토착 지명

'뱀골'과 '뒷산'은 없고 '그린빌 1차'만 남았다: 아파트 단지가 지우는 토착 지명 1.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이름, '말죽거리'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에도 본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밤나무가 많던' 율동(栗洞), '긴 개울이 흐르던' 장천(長川)처럼, 그 이름에는 땅의 생김새와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이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수백 년 된 마을의 이름은 '힐스테이트', '더샵퍼스트월드', '센트럴파크' 같은 국적 불명의 이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과거旅人들이 한양으로 향하며 말에게 죽을 끓여 먹였다던 '말죽거리'는 이제 양재역 ..

"할머니의 사투리는 '번역'이 필요했습니다": 지도에서 사라지는 언어들

"할머니의 사투리는 '번역'이 필요했습니다": 지도에서 사라지는 언어들 1. '아이고, 짠해라', 표준어로는 담을 수 없는 마음의 결 명절에 찾아뵌 할머니께서 손주를 보며 "아이고, 짠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표준어 '안쓰럽다'나 '안됐다'로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그 속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의 결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립니다. 애틋함, 가여움, 그리고 깊은 사랑이 한데 녹아 있는 이 말은 해당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공유한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언어'입니다. 이처럼 사투리는 단순히 표준어와 다른 억양이나 단어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백 년에 걸쳐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