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붕괴

은행 점포는 사라지고, 읍내 유일의 ATM도 철거됩니다

구0305 2025. 8. 14. 10:01
은행 점포는 사라지고, 읍내 유일의 ATM도 철거됩니다

은행 점포는 사라지고, 읍내 유일의 ATM도 철거됩니다

1. '업무 종료' 안내문 뒤에 남겨진 사람들

은행 문 앞에서 망연자실한 노인

평생 이용했던 읍내 농협 문에 '영업 종료' 안내문이 붙었습니다. 통장을 정리하고 현금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나선 어르신의 발걸음이 그 앞에서 멈춥니다. 안내문에는 '모바일 뱅킹 앱을 이용하시거나 40분 거리의 시내 지점을 방문해달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은커녕, 버스도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마을에서 이는 사실상 '거래 거절' 통보나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은행 점포의 폐쇄는 단순히 편의 시설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의 빠른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취약계층을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보이지 않는 폭력입니다. 금융 소외는 이제 지역소멸의 가장 냉혹하고 현실적인 얼굴이 되어 우리 곁에 다가왔습니다.

[시각 자료 1] 전국 군·면 단위 은행 점포 수 변화

2015년: 1,821개 → 2025년: 975개 (추정)

(지난 10년간 약 46% 감소)

2. '수익성'이라는 칼날, 가장 약한 곳을 베다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는 모습

은행은 자선 단체가 아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인구가 적고 거래량이 많지 않은 지역의 점포를 유지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을 유발합니다. 반면, 모바일 뱅킹과 인터넷 뱅킹은 인건비와 임대료 없이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수익성 개선'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점포를 축소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영 판단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격차의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됩니다. 간단한 계좌 이체조차 자녀에게 부탁해야 하는 어르신들에게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공허할 뿐입니다. 모두가 디지털 고속도로를 달릴 때, 누군가는 갓길조차 없는 흙길에 버려지고 있는 셈입니다.

[시각 자료 2] 은행 점포 폐쇄에 대한 양측의 시각
구분은행의 입장 (효율성)주민의 현실 (생존권)
비용점포 유지비(임대료, 인건비) 절감시내까지의 교통비, 시간 비용 발생
접근성모바일 앱으로 24시간 접근 가능디지털 기기 사용 불가, 물리적 접근 차단

3. 현금 없는 사회? 현금 '못 쓰는' 사회!

점포 폐쇄 이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읍내 유일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마저 철거된다는 소식은 주민들에게 내리는 마지막 사형선고와 같습니다. 우리는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역의 5일장과 작은 가게들은 여전히 현금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에게 ATM은 자신의 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창구입니다. ATM의 소멸은 금융 사막화 현상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주민들은 생활비를 인출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현금 원정'을 떠나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큰돈을 장롱에 보관해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불편을 넘어, 지역 내 소비 위축과 현금 기반의 영세 상권 붕괴로 이어져 지역 소멸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4. 은행원은 금융 상담사, 때로는 보이스피싱 방지턱

은행 창구에서 친절하게 상담하는 은행원

지역의 은행 점포는 단순히 돈을 찾고 부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의 은행원은 때로 자식보다 더 의지가 되는 금융 상담사였고, 복잡한 공과금 수납을 도와주는 해결사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 사기로부터 어르신들을 지키는 마지막 방파제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고액의 현금을 한 번에 인출하려는 어르신의 불안한 표정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어디에 쓰시려구요?"라는 다정한 질문 하나로 수천만 원의 피해를 막아낸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점포 폐쇄는 이처럼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소중한 사회적 안전망 하나가 함께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빈자리는 곧바로 금융 범죄의 표적이 됩니다.

[시각 자료 4] 지역 은행원의 숨겨진 역할

단순 거래 이상의 가치

금융 상담: 노후 대비, 보험 상품 등 맞춤형 상담
디지털 교육: 스마트폰 앱 설치 및 사용법 안내
사기 예방: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 발견 및 신고

5. '최소한의 금융 존엄'을 지키기 위한 고민

우체국 창구의 모습

수익성 논리만을 앞세운 점포 폐쇄를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의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금융 당국과 은행권은 '수익' 이전에 '공공성'을 고민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어디에 살든 기본적인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요일에 마을을 순회하는 '이동 점포'나 여러 은행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 점포' 운영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우체국 금융망을 적극 활용하여 어르신들이 간단한 입출금이라도 할 수 있도록 연계 서비스를 강화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금융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며, 보편적 금융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의무입니다.

[시각 자료 5] 금융 소외 해소를 위한 대안
  • 이동 점포(차량 은행): 🚌 주 1~2회 특정 마을을 순회하며 기본적인 은행 업무 제공
  • 공동 점포: 🏦 한 점포에 여러 은행 창구를 함께 운영하여 비용 절감 및 효율성 증대
  • 우체국 연계: 🏣 전국 우체국 망을 통해 시중 은행의 입출금, 송금 서비스 대행
  • ATM 의무 유지: 🏧 인구 밀집도와 관계없이, 최소 행정구역 단위별 ATM 최소 수량 유지 의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