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다니던 '공영버스' 노선이 폐지된 후, 노인들은 병원을 포기했다
생명줄 같았던 하루 두 번의 동행
새벽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농촌의 아침, 마을 어귀 정류장은 언제나 비슷한 얼굴들로 채워졌습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지팡이에 의지한 할아버지에게 하루 단 두 번 오는 공영버스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생명을 이어주는 동아줄과도 같았습니다. 이 버스는 읍내 장으로 향하는 발이 되어주었고, 멀리 사는 자식들을 만나러 가는 설렘을 실어 날랐으며, 무엇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희망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나누는 정겨운 대화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눈인사는 그 어떤 값비싼 약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특히나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인 병원 방문이 필수적인 어르신들에게 이 버스는 단순한 편의가 아닌, 건강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었습니다. 버스 운행 시간에 맞춰 병원 진료를 예약하고, 그 시간에 맞춰 하루의 모든 일과를 짜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버스는 수십 년간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하며 어르신들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인, 삶의 일부이자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끊겨버린 길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것은 ‘적자 누적’과 ‘운수업체 경영난’이라는 차가운 단어들이 담긴 공고문 한 장이 마을 회관에 붙으면서부터였습니다. "본 공영버스 노선은 수익성 악화로 인해 다음 달부터 운행이 중단됩니다."라는 짤막한 문장은 어르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거대한 충격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공기와도 같았던 존재의 상실 앞에서 모두가 망연자실했습니다. 당장 다음 주에 예약된 병원은 어떻게 가야 할지, 한 달에 한 번 타는 혈압약은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편도 수만 원에 달하는 택시비는 연금 몇 푼으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입니다. 자녀들에게 매번 신세를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각자의 생업으로 바쁜 자식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조차 미안한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결국 노선 폐지는 단순한 버스 운행의 중단이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 그리고 건강을 돌볼 권리의 박탈을 의미하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약을 끊고, 진료를 미루다

버스가 끊기자 어르신들의 삶은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나이에 더 살아서 뭐하나, 그냥 아프면 아픈 대로 살아야지."라는 체념 섞인 말들이 마을 곳곳에서 들려왔습니다. 정기적으로 받아야 했던 물리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혈압약과 당뇨약처럼 생명과 직결된 처방을 거르는 일이 비일비재해졌습니다. 웬만큼 아파서는 읍내 병원은커녕 보건소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파스 한 장으로 통증을 견디거나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이는 결국 작은 병을 키워 더 큰 합병증을 유발하고,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의료 접근성의 단절은 신체적 건강 악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을 심화시키는 정신적 문제까지 야기합니다. 마을 회관에 모여 버스를 기다리며 나누던 소소한 교류마저 사라지자, 어르신들은 집 안에 갇힌 채 무력감과 외로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교통 약자에게 대중교통은 단순한 이동권의 문제를 넘어, 기본적인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임을 이 비극적인 현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 논리 앞에서 사회 가장 취약한 계층의 건강과 삶이 무참히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용'이 아닌 '복지'의 관점으로, 대안은 없는가?

수익성 논리에 밀려 사라진 공영버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와 사회의 책무에 관한 문제입니다. 단기적인 해결책으로는 수요 응답형 버스(DRT), 즉 '콜버스'나 '행복택시'와 같은 대체 교통수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노선 없이,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방식은 교통 소외 지역의 발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 보건소와 연계한 '찾아가는 진료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근본적으로는 대중교통을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사회 복지 인프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정 지원을 확대하여 최소한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며, 지역 공동체 역시 '우리 마을 어르신은 우리가 돌본다'는 마음으로 카풀이나 자원봉사 등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경제적 논리에 밀려 소중한 생명이 방치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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