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용소방대'도, '자율방범대'도 이제는 옛말: 떠나는 사람들과 함께 해체되는 안전망
'내 마을은 내가 지킨다', 헌신으로 쌓아 올린 방파제

'불이야!' 하는 외침이 확성기보다 빨랐던 시절,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 양동이와 등짐펌프로 불길과 맞서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밤늦은 골목길, 순찰차가 돌지 못하는 곳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지키며 여성과 아이들의 안전한 귀갓길을 만들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의용소방대와 자율방범대입니다. 이들은 '내 이웃과 내 마을은 내가 지킨다'는 순수한 사명감과 헌신으로 뭉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었습니다. 법적 의무나 대가 없이, 오직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지역 사회의 가장 촘촘한 안전망 역할을 해왔습니다. 전문 소방 인력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화재 현장의 최선봉에 섰고, 치안 공백이 우려되는 곳에서는 범죄 예방의 파수꾼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물리적 안전을 지키는 것을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지탱하는 강력한 심리적 기둥이었습니다.
회색 머리가 지키는 안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하지만 한때 든든했던 그들의 어깨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용소방대와 자율방범대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바로 회원의 고령화입니다. 20~30대 청년들이 농어촌을 떠나고 도심에서도 팍팍한 삶에 치이면서, 대를 이어 봉사에 참여하던 문화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신규 회원의 유입은 가뭄에 콩 나듯 하고, 기존 회원들은 60대를 넘어 70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화재 진압과 범죄자 추격이라는 고된 활동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나이가 된 것입니다. 방범대 순찰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야간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이들의 활동은 '그들만의 리그' 혹은 '옛날이야기'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개인주의의 확산과 공동체 의식의 약화는 세대 간 단절을 불러왔고, 그 직격탄을 지역 안전의 최전선이 맞고 있는 셈입니다.
방파제가 무너진 자리, 밀려오는 불안의 파도
이들의 부재가 가져오는 결과는 명확합니다. 바로 지역 안전망의 붕괴입니다. 소방서와 원거리에 있는 농어촌 및 산간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의용소방대의 초기 대응 5분은 대형 화재로 번지는 것을 막는 골든타임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자율방범대의 순찰이 끊긴 동네에서는 청소년 비행, 절도와 같은 생활 범죄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커집니다. 특히 독거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은 범죄와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CCTV와 같은 첨단 장비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눈과 발이 주던 세심한 관심과 즉각적인 대응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봉사자들의 이탈은 단순한 인력 감소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안전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낡은 장비와 무관심, 마지막 헌신마저 등 떠미나
남아있는 대원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인력 부족이라는 문제 외에도 열악한 지원이라는 현실과 싸우고 있습니다. 낡고 규격에도 맞지 않는 방화복, 해진 순찰 조끼, 성능이 떨어지는 무전기 등 기본적인 장비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최소한의 활동비 지원마저 턱없이 부족하여 사비를 털어 운영하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사회적 무관심입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희생, 제대로 된 인정과 보상의 부재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헌신마저 꺾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힘에 부친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뭐하러 하나"와 같은 자조 섞인 목소리가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투정이 아닌,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마지막 경고나 다름없습니다.
- 1. 신규 인력 부족 (45%)
- 2. 장비 노후 및 부족 (30%)
- 3. 정부/지자체 지원 미흡 (15%)
- 4. 사회적 무관심 및 인정 부족 (10%)
새로운 시대의 영웅을 찾아서, 지속가능한 안전망을 위한 제언

이제는 과거의 헌신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낡은 틀을 과감히 벗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년 봉사자에게는 학점 인정, 취업 가산점, 세금 감면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활동 내용을 재난 대응 훈련, 심폐소생술 교육 등 전문성을 갖춘 생활 안전 서비스로 다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지자체는 이들을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닌, 공공 안전 시스템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예산과 장비를 지원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기업의 사회공헌(CSR) 활동과 연계하여 운영을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지역 안전은 더 이상 몇몇의 헌신에 기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투자해야 할 최우선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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